로스쿨의 취지는 안드로메다로 - (2)

‘반수하는 로스쿨’ 벌써 서열화 조짐   <-- 2009년 7월 3일 경향신문 기사

며칠 전 LEET(법학적성시험) 원서접수가 끝난 가운데, 명문대 로스쿨로 신분상승(?)하기 위해 반수하는 로스쿨생이 상당수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하여 수십억의 비용을 투자하고 장학금 혜택까지 대폭 부여하는 등 엄청난 출혈을 감수한 비명문대 로스쿨에서는 대규모 결원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실제로 지방의 한 사립대 로스쿨의 경우 재학생의 10%가 반수를 선택하였다고 한다.

로스쿨의 설립취지 중의 하나가 법조계의 학벌타파였는데, 로스쿨 도입 첫 해부터 로스쿨의 서열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로스쿨생 스스로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인서울(서울소재 대학교), 지거국(지방거점 국립대), 강제동원령(원대, 주대, 아대, 광대, 남대) 운운하면서 학벌격차를 공공연하게 떠들고 있는 형편이다.

이 역시 로스쿨 도입 당시부터 충분히 예견된 사태였지만, 로스쿨 도입를 외치며 삭발투쟁까지 마다않던 (지방대) 법대 교수들과 법조계의 SKY 독과점 타파를 외치던 참여연대는 로스쿨이 도입되면 학벌 없는 아름다운 사회가 도래할 것처럼 국민들을 현혹하였던 것이다. (이들의 의도가 순수했다는 가정하에서) 과연 이들은 왜 로스쿨이 학벌차별을 극복한다는 오해를 하게 되었을까?

첫째, 기존의 사법시험 체제하에서 SKY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이유는 (기득권 세력의 불순한 음모때문이 아니라) 수험생 집단의 규모 및 능력차이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외면하였기 때문이다. 학업능력은 수능성적과 정확히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양의 상관관계에 있는 것은 분명하며, 따라서 명문대 출신이 비명문대 출신보다 사법시험에 합격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당연하다. 게다가 명문대 출신 수험생 집단이 비명문대 출신 수험생 집단보다 규모가 더 크기 때문에 합격자의 절대적 수치에 있어서도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둘째, 법조계가 다른 분야보다 학벌차별이 훨씬 적다는 사실을 외면하였기 때문이다. SKY 출신이건 지방대 출신이건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며, (사법시험 및) 사법연수원 성적에 따라 "판사 > 대형 로펌 > 검사 > 중소 로펌 > 개업변호사"로 칼같이 구별되고 있다. 다만, 김앤장과 같은 몇몇 대형 로펌의 경우 학벌을 본다고 하지만, 적어도 판 · 검사의 경우에는 학벌차별이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로스쿨의 경우 입학전형부터 SKY 출신을 노골적으로 우대하는 등 로스쿨 당국 스스로가 학벌차별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셋째, 로스쿨을 각 대학에 배분한 이상 해당 대학교의 후광효과를 입게 된다는 사실을 외면하였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서울대를 정점으로 대단히 세분화된 학벌카스트 체제가 공고한데, 각 대학들이 로스쿨을 운영하면 필연적으로 명문대 로스쿨과 비명문대 로스쿨로 구별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명문대 로스쿨이 비명문대 로스쿨보다 (사법연수원과 비교해볼 때 도토리 키재기이기는 하지만) 교수진이나 인프라면에서 우위에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결국 로스쿨 도입은 법조계 내부에 학벌에 따른 서열화를 타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열화를 조장하는 효과를 야기한 것이다. 기존의 제도 하에서는 고등학교 때 놀아서 수능을 못봤더라도 사법시험 공부를 열심히 하여 합격하면 명문대 출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출신 로스쿨에 따라 차별대우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우리나라에 정말로 로스쿨 도입이 절실하였다면 로스쿨 도입당시 부실한 교육, 학벌카스트, 과다한 대학등록금 등 교육계의 제반사정을 고려하였어야 했다. 가령 기존의 사법연수원을 로스쿨로 확대개편하든가 아니면 프랑스처럼 국립법률학교를 설립하였다면 학벌차별이 원천봉쇄될 뿐만 아니라 저렴한 비용으로(혹은 무료로) 우수한 교수진 하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이러한 사태는 미국(과 일본)의 제도라면 무조건 선진적인 제도인양 똥오줌을 못가렸던 정책당국과 로스쿨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한 대학당국, 돈과 명예에 눈이 어두워 제자들의 미래마저 팽개쳐버린 법대 교수들, 무조건 뒤엎으면 OK라는 근시안적 사고를 가진 시민단체의 합작품이라 봐도 무방하다. 과다한 비용, 부실한 교육, 학벌차별 등 온갖 부조리한 로스쿨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나라 법조계의 미래가 암울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by 비잔티움 | 2009/07/03 21:15 | - 시사 | 트랙백(1)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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